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카그니 (문단 편집) === 입양 자녀 논란 === 아버지로서는 실격이어서 1940년에 입양한 아들 제임스 프랜시스 캐그니 3세(James Francis Cagney III), 역시 입양한 딸 캐슬린 "케이시" 캐그니(Cathleen "Casey" Cagney) 둘 모두와 절연했고, 말년엔 자식들과 전혀 왕래가 없었다. 부부 사이엔 사랑이 넘쳤으나 입양한 자식들은 아껴주지 않았다는 점은 [[메리 픽포드]] 부부와 같다. 픽포드의 경우처럼 소문도 날만큼 나있었다. 입양 아들은 1984년 제임스 캐그니보다 먼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42세. 제임스 캐그니는 출생 당시 풀네임이 제임스 프랜시스 캐그니 주니어(James Francis Cagney Jr.)였는데 아버지 제임스 캐그니 시니어 사망 후엔 본인이 제임스 캐그니 시니어가 되었고, 입양한 아들인 제임스 프랜시스 캐그니 3세가 제임스 프랜시스 캐그니 주니어가 되어 입양 아들이 사망했을 시점엔 손자가 제임스 캐그니 3세(James Cagney 3d)로 불리게 되었다. 입양 아들은 손녀 신디 캐그니(Cindy Cagney)도 남겼다. 이때 제임스 캐그니의 조수는 입양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임스 캐그니가 "매우 속상해했다"고 언론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제임스 캐그니는 사망 직전에 가졌던 [[https://www.interviewmagazine.com/culture/james-cagney-gregory-speck-interview|인터뷰]]에서 기자가 가족 제도가 붕괴되고 있는 오늘날의 세태에 대해 의견을 묻자 이를 비판하고 자신이 형제들을 얼마나 잘 돌봤는지를 강조하기까지 했다.[* 물론 해당 기자는 캐그니를 돌려까기 위해 일부러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캐그니는 2년 뒤인 1986년 사망하면서 당시 생존해있던 입양 딸 케이시 캐그니는 물론 손주들 전체를 유산 상속에서 제외했다. 그나마 메리 픽포드는 자녀들에게 명목상의 소액 유산을 분배하기라도 했는데 제임스 캐그니는 그마저도 없었다. 입양 아들 사망 시에 조수가 했던 말은 그저 흉흉했던 여론을 잠재우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딸은 캐그니를 용서했던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